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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2016

PHANTŒM MUSÆUMS BY 퀘이 형제






 도쿄 근교의 가나가와현 근대 미술관 하야마관에서 2016년 7월 23일부터 10월 10일까지 퀘이 형제의 전시가 열립니다. 이 전시는 앞으로 2년 간 일본을 순회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그 첫 출발이 바로 하야마입니다. 저는 이 전시가 시작되기 직전에야 퀘이가 일본에 온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퀘이 형제의 다음 작품에 들어가는 뼈대 작업 때문에 그들과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 받고 있었는데, 바로 옆 나라 일본에 온다는 것이 아닙니까!

7개월 간의 길고 힘들었던 퀘이 작업이 끝나자마자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어 기뻤습니다. 사실 서너 해 전 뉴욕 MoMA에서 열린 퀘이 형제의 전시를 직접 보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쉬웠거든요. 그럼 올해 여름 휴가는 일본으로 고고! 고맙게도 퀘이 형제가 전시 오프닝에 저를 초대해주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퀘이 형제를 만난 것은 2012년 겨울로, 당시 런던에 있는 그들의 작업실에서 작은 와인 파티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었던 추억이 있습니다. 수년만에 다시 친구들을 본다는 생각, 전시에 대한 기대, 그리고 여행의 설렘으로 한껏 들떠 일본 땅에 발을 디뎠습니다.

이번 일본 여행 직전에 한국 독립 작가의 관절뼈대 의뢰가 들어와 한창 작업 중이었는데, 사실 진도가 더뎌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행갈 생각을 하니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를 초인적인 힘이 생겨 그 뼈대 작업을 단시간에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퀄리티도 스스로조차 놀랄 정도로 굉장히 만족스러웠습니다. 언젠가 다음 기회에 그 작업에 대한 이야기도 써보려고 합니다. 제가 이제껏 만든 뼈대 가운데 가장 가느다란 작품 중 하나거든요.


가나가와현 근대 미술관 하야마관의 전경. 바로 앞에 해변과 바다가 멋지게 펼쳐진 곳입니다.


퀘이 형제의 전시 오프닝 당일, 도쿄 이케부쿠로에서 1시간 반 가량 시외선을 타고 가나가와역에서 내린 뒤 버스로 갈아타고 가나가와현 근대 미술관 하야마관에 도착했습니다. 왜 첫 전시를 도쿄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할까 의아해 했는데, 하야마에 가보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야마는 해수욕장과 고급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더군요. 일본 왕실 전용 별장도 있다고 합니다. 해변가에 위치한 이 미술관은 바다를 향해 탁 트인 전망이 참 멋집니다. 그리고 퀘이 형제의 전시도 이에 못지 않게 훌륭한 전시였습니다.


퀘이 형제의 일본 전시회 오프닝 행사


이번 전시는 내용상 크게 영상, 세트,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으로 나뉩니다. 전시장 곳곳에는 퀘이 형제가 작품에서 사용했던 여러 세트가 놓여져 있고, 그들의 영상 작품이 중간중간 설치되어 있는 몇 개의 대형 스크린에 나뉘어 상영됩니다.

사실 퀘이의 작업을 대형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좁은 컴퓨터 화면으로 그들의 작품을 볼 때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퀘이 형제가 창조한 거대한 환상 세계로 관객이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랄까. 작품의 어둡고도 기괴한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압도되었습니다. 퀘이 작품을 대형 스크린으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전시에 가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퀘이 형제는 이제까지 장단편 영화 외에도 여러 가지 작업을 해왔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들이 작업한 상업 광고도 다양하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퀘이 형제와 상업 광고의 조합이 이질적이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래서 신선하고 독특한 작업물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퀘이만의 스타일이 물씬 풍기는 광고들을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은 Please Sniff: Powdered Deer Ejaculate입니다. 오프닝 당일 공개 행사에서 퀘이가 직접 그리고 설치하였습니다. 전날 형제랑 술 한 잔 하면서 이 작품에 얽힌 이야기를 분명히 들었는데.. 영어 실력 때문인지 술 때문인지 기억이 가물가물.. 이번 전시에서 유일하게 촬영가능한 작품이었습니다.


언젠가 퀘이 형제의 작품을 보다가 그들이 프레임 안의 움직임을 붓처럼 사용해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퀘이의 작품 안에서 그렇게 움직이는 다양한 요소 중에서도 제가 가장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퍼펫입니다. 퍼펫의 움직임이야말로 제 직업이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십여년 전 퀘이의 런던 스튜디오를 처음 방문했을 당시 그들이 만든 퍼펫 실물을 보고 전율을 느꼈는지 모릅니다. 그 퍼펫에 제가 만든 금속관절 뼈대가 들어가는 거니까요. 이번 전시에서도 제가 가장 주목한 것은 세트와 퍼펫이었습니다.

전시된 세트 가운데 일부에는 큰 직경의 돋보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돋보기를 통해서 관객은 퀘이 작품 속의 몽환적인 장면을 직접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마치 작품 속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면서 그 안의 퍼펫이 조금씩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큰 볼록렌즈의 굴절로 인해 왜곡된 이미지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고나 할까요. 아쉽게도 전시장 내부에서는 사진을 찍는 게 금지되어 있어서 보여드릴 수가 없네요.

영상과 세트 외에도 퀘이 형제는 다양한 일러스트레이션과 프로덕션 디자인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여러 분야에서 창조적인 재능을 발휘하는 퀘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미처 예상치 못한 큰 수확이었습니다.


퀘이 형제의 미국 MoMA 및 일본 전시회 도록. 이번 전시에서 만난 일본인 친구에게서는 블루레이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이번에 일본에서 퀘이 단편선으로 출시된 따끈따끈한 신작입니다.


오프닝 행사 이후 전시를 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이 미술관은 폐관 시간이 오후 5시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한국처럼 미술관 폐관이 오후 7,8시일 것이라 생각한 게 제 불찰이었죠. 게다가 오프닝 첫날이라 분위기가 어수선해서 전시를 집중해서 보기가 어려워 좀 아쉬웠습니다. 나중에 또 일본에 갈 기회가 생기면 다시 한 번 이 전시를 보려고 합니다.

제가 금속관절 뼈대 전문가(armature specialist)로 퀘이 형제의 작업에 참여한 지가 벌써 십여 년이 넘었습니다. 이제까지는 작품에 참여하는 스탭의 입장일 때가 많았지만, 이번에는 그들의 오랜 팬이자 친구로서 오프닝에 참석하여 전시를 마음껏 즐겼습니다. 물론 뒤풀이에 가서도 신나게 놀았지요. 이 전시가 2년 동안 일본을 순회한다고 하는데,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나중에 한국에도 들어올 수 있었으면 합니다.

MoMA 뉴욕에서는 이제까지 애니메이션 관련 전시가 딱 세 차례 열린 바 있습니다. 그 중에서 Pixar전과 팀 버튼 감독의 전시는 한국에서 열린 적이 있는데, 과연 퀘이 형제의 전시도 국내에서 볼 수 있을런지.. 이들의 어둡고도 기괴한, 그러면서도 초현실적이고 몽환적인 세계를 여러분이 언젠가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합니다.

아래는 퀘이 형제가 일본 전시회 오프닝에서 공개 라이브 페인팅 작업을 하는 모습과 인터뷰를 담은 영상입니다.






4/27/2016

사슴꽃, BISFF에서 수상




이전 포스팅에서 제가 주목할 만한 감독으로 언급한 적이 있는 김강민 감독이 신작 <사슴꽂 Deer Flower>으로 지난 26일 폐막한 부산국제단편영화제(BISFF)에서 한국 경쟁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위 동영상은 이 작품의 트레일러입니다.

김강민 감독의 데뷔작인 <38-39℃>가 전해준 신선한 충격의 여운이 아직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 신작이 올해 벌써 여러 페스티발에 초청되어 상영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이번 BISFF 수상으로 김강민 감독이 올 한해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슴꽃>, 김강민 감독
혁신과 창의성과 독창성으로 자신의 비전을 펼친 감독의 재능은 모든 심사위원을 사로잡았습니다. 참신함과 전통적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한 기술적 재능뿐만 아니라 희극과 비극적 요소가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 독특함과 보편성을 모두 갖춘 수작이 완성되었습니다.

위 내용은 바로 BISFF의 심사평입니다. 김강민 감독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와 상징들은 아주 강력한 시각적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스톱모션 기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표현방식은 그보다 훨씬 더 자유분방하고 새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요소들 덕분에 그의 작품은 몰입도가 더 높고, 상영이 끝난 뒤에도 왠지 모를 긴 여운이 남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 블로그에서 한국 스톱모션 업계 소식를 전하고 이 분야의 새로운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김강민 감독의 이번 신작을 보고 나니, 스톱모션 분야에서 능력이 출중한 한국의 신진 감독들이 꾸준히 실험적인 시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일전에 한 번은 김 감독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 적이 있습니다.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게 해준 데에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하고 싶네요.


1/11/2015

JIN AIR 스톱모션 광고






세대를 아우르는 마니아층을 보유한 레고(LEGO)나 플레이모빌(Playmobile) 같은 피규어들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오브제로 자주 사용된 바 있습니다. 최근에는 스톱모션 스타일의 CG영화 <레고 무비(The LEGO Movie, 2014)>가 개봉되어 그 사그라들지 않는 인기를 다시 한 번 과시하기도 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2014년 11월 플레이모빌을 이용한 진에어 광고가 런칭되었습니다. 1차 광고인 ‘후쿠오카’편의 뒤를 이어 12월에는 2차로 ‘코타키나발루’편이 나왔구요. 이 두 편의 광고는 친근한 피규어들의 신나고 경쾌한 리듬감을 볼 수 있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입니다. 애니메이팅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스톱모션용 인형이 아닌, 움직임에 제약이 있는 피규어를 그대로 사용한 탓에 애니메이팅에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 광고 컨셉에 맞는 흥겨운 분위기와 움직임이 멋지게 표현된 광고입니다.

이 광고를 제작한 사람은 ‘쇼타임 스튜디오‘의 김준문 감독입니다. 이미 업계에서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캐리커처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 소화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김준문 감독의 대표작인 무한도전의 클레이 애니메이션과 메리츠 화재의 퍼펫 애니메이션 광고는 다들 한 번쯤 접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작년 12월에는 국내에서 제작한 스톱모션 광고가 미디어에 유달리 자주 노출되었습니다. 최소 네 편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확인해본 결과, 모두 쇼타임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광고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수의 광고가 동시다발적으로 방영된 점, 그리고 그 모든 광고를 특정 스튜디오에서 전부 만들었다는 점은 스톱모션 업계에서 그리 흔한 일이 아닙니다.김준문 감독은 한 달에 최소 두 편 정도의 광고 제작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많게는 한 달에 네 편이나 되는 광고에 참여한다고 하니 준비와 촬영기간이 짧은 광고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가히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더군요.

김감독의 쇼타임 스튜디오를 생각하면 클레이 애니메이션이 자연스럽게 먼저 떠오릅니다.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거장 윌 빈튼도 극찬한 김준문표 캐리커처 캐릭터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쇼타임 스튜디오의 포트폴리오를 찬찬히 살펴보면 최근 몇 년간은 스톱모션의 다양한 세부 장르에 도전하고 실험하는 시기였고 지금은 10여년이 넘은 그의 치열했던 경력에서 나온 솜씨가 완숙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김준문 감독은 컷아웃, 픽실레이션, 페이퍼, 피규어, 의류, 가방 등 거의 모든 오브제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광고를 만들고 있습니다. 오히려 다루지 않은 오브제를 찾는 게 더 빠를 정도죠. 지상파나 케이블, 그리고 인터넷에서 봤던 다양한 스톱모션 광고들 중 열에 아홉은 김준문 감독의 쇼타임 스튜디오에서 만든 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KT, SK텔레콤 등의 통신사 광고에서부터 다음, 코카콜라 같은 대기업 광고, 그리고 유아용 장난감 광고까지 말이지요.

우리나라에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광고나 홍보영상 제작에 참여할 경우, 손이 여간 빠르지 않은 애니메이터가 아니고서는 광고주와 광고 프로덕션을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제작기간이 매우 짧거나 애니메이터가 광고 촬영장에 당일 투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어느 프로덕션이 알음알음 고용한 애니메이터의 서투른 실력 때문에 촬영 당일 광고주 앞에서 낭패를 봤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제작을 실제 담당하는 사람이 어떤 작업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 즉 다시 말해 ‘경험’이 중요한 건 광고 촬영현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돌발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노하우와 순발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기로 광고 촬영시 혼자 인형과 세트를 수정하며 애니메이팅까지 할 수 있는 경험 많은 감독급 인력은 두어 명에 불과합니다. 김준문 감독은 광고 프로덕션과 여러 작업을 함께 하며 쌓은 신뢰를 통해 지금처럼 많은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스톱모션 스튜디오 입장에서 세트와 퍼펫을 이용한 스톱모션은 오브제를 이용한 스톱모션보다 시간과 노동력의 측면에서 더 큰 부담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퍼펫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광고와 홍보물의 단가가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저평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쇼타임 스튜디오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있자면 김 감독이 효율적인 스튜디오 운영에 대해 고심한 흔적들을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습니다. 김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자타공인 최고 실력자이면서도 본인의 주특기 장르만이 아니라 스톱모션 세부 장르로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현실적인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환영할 만한 건 우리나라에도 여러 가지 오브제를 사용해 스톱모션의 다양한 모습을 일반인에게 보여주는 쇼타임과 같은 스튜디오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스톱모션하면 퍼펫이나 클레이애니메이션이 전부라고 알고 있는 일반적인 선입견을 깨고 있다는 말이죠. 이거야말로 진정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대중화’가 아닌가 합니다.

스톱모션 스튜디오의 운영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김준문 감독의 ‘쇼타임 스튜디오’는 광고시장의 다변화된 니즈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한사람의 천재성을 기반으로한 감독 중심의 스튜디오 형태를 정착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스톱모션의 확장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상업 스튜디오의 생존방법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지요. 반면, 앞서 다른 포스트에서 다룬 적이 있는 양종표, 이희영 두 감독의 ‘콤마 스튜디오’의 경우에는 척박한 한국 스톱모션 환경에서 유기적인 팀 작업을 위한 전문가 스텝 시스템을 꾸준히 실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두 스튜디오는 지속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면서 한국적 스튜디오 시스템을 연구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선례를 한국 스톱모션 역사에 남기고 있습니다. 저는 전설의 사업가 감독들이 자신들의 스튜디오가 스톱모션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등의 번지르르한 사탕발림으로 젊은 스텝들을 선동했야만 했던 시절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저분한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지금 이 순간, 더 명확해진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우리 스톱모션 역사가 꾸준히 활동하는 작업자의 몫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촬영을 하고 있을 쇼타임 스튜디오의 김준문 감독 같은 대중예술 작업자들 말입니다. 2015년 새해에는 좋은 작업자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11/19/2014

Amway Korea Advertising




이번 암웨이 기업광고는 오랜만에 보는 신토불이(^-^) 풀 스톱모션 광고입니다.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한 극강 비주얼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광고에서는 크기의 왜곡이 없는 라이프 사이즈의 세트가 사용됐는데요. 광고에 나오는 서랍 안 모형 및 풍경의 크기는 작아서 애니메이팅하기 적당한 사이즈가 아니라는 걸 아실 겁니다.

여기에서는 서랍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작은 크기의 인형들로 속칭 ‘떼샷’이라고 불리는 그룹 애니메이팅이 능수능란하게 이뤄지는, 꽤 난이도가 높은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농사짓는 모습의 트랙킹샷이 나오는 초반부와 낙하산이 떨어지면서 낮과 밤이 바뀌는 빌딩숲을 촬영한 마지막 부분은 이 광고의 백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감탄사가 절로 나왔던 멋진 장면들입니다.

이 광고를 만든 콤마스튜디오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흥미로운 회사입니다. 콤마는 제작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가지고 자력으로 300여 평의 스튜디오 공간을 마련했고, 작업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모션 컨트롤러와 같은 고가의 제작 장비에 아낌없는 투자를 해왔습니다. 이 암웨이 광고에서 볼 수 있는 부드러운 화면 이동은 보유한 두 대의 모션 컨트롤러를 사용한 결과물입니다.

또한 콤마는 10년 넘게 꾸준히 장편 및 시리즈 프로젝트를 담당해온 파트별 스텝들을 보유하고 있어 장편까지도 별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다소 한국적 풍토에서는 희귀한(?!) 스톱모션 전문 스튜디오입니다. 이 스튜디오는 출발점 자체가 장편과 시리즈물 제작이었기 때문에 제작능력과 작업의 질적인 면에서 여타 스튜디오들과는 확연하게 차별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타 애니메이션보다 스텝 개개인의 기여도가 높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에서는 다양한 프로젝트에서의 경험을 통해 세월로 다음어진, 숙련된 인적자원을 보유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번 암웨이 광고에서 콤마의 다져진 팀워크를 엿볼 수 있다고 봅니다. 게다가 몇 주 안되는 짧은 시간에 세트 제작부터 촬영까지 마쳤다고 하니 콤마의 제작능력에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나라의 작업 환경에서 상업 스튜디오의 스텝으로 한 회사에서 오랜 기간 동안 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스튜디오조차 살아남기 힘든 작은 시장 규모가 그 주된 이유이긴 하지만, 스텝들의 고혈을 짜냈다는 입소문이 전해지는, 이름만 번드르르한 사업가 사장님들도 여기에 한몫했습니다. 이제는 결과적으로 실력 좋은 스텝들은 이미 업계를 떠났고, 그나마 남아 있는 인력 또한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입장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의 업계라 부르기 창피할 정도로 몇 곳 안되는 스튜디오들은 인력난이라는 악순환을 겪게 된지 오래입니다.

이렇게 상업 스튜디오가 살아남기 힘든 현실에서도 수익성과 제작의 질이라는 두 화두를 안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콤마스튜디오의 열정에 오랜 시간 업계에서 동고동락한 동료로서 큰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스톱모션 역사가 비교적 짧은 국내에도 해외의 웬만한 스튜디오를 능가하는 콤마와 같은 규모의 스튜디오가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6/19/2014

화장지를 이용한 애니메이션




몇 달 전 일본의 프로듀서 친구가 공유해서 보게 된 스톱모션 영상입니다. 화장지를 이용해 오브제를 만들고 손을 이용해 움직임을 창조하는 아주 간결한 광고입니다. 지난주에 폐막한 안시 페스티발에서 광고상을 수상했더군요.

애니메이션에서 조종자, 애니메이터나 그들의 손이 보이는 영상들은 애니메이션 초창기부터 나타나는 재미난 현상 중의 하나입니다. 스톱모션의 매력을 거칠지만 원초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지 않을까 싶네요. 제 오랜 친구이자 애니메이션 이론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나호원 선생도 영국 RCA 졸업논문의 주제가 이것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5/27/2014

라이카(미국) 광고제작 중단

장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인 <코렐라인>과 <파라노만>으로 알려진 라이카 스튜디오가 장편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에 전력투구하기 위해 광고제작을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장편 애니메이션팀과는 별도로 47명의 정규직과 24명의 프로젝트 인력들이 근무하고 있는 라이카 하우스로 알려진 광고 제작팀이 분사해서 별도의 법인이 될 모양입니다. 아직 새로운 스튜디오 명이나 라이카의 재정적인 지원에 관해선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하네요.

현재 라이카 장편제작팀은 9월에 개봉예정인 <박스 트롤스 The boxtrolls>를 마무리 하는 중이고, 곧 네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 계획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윌빈튼 스튜디오에서 계승된 노하우와 실력, 그리고 다국적 기업 ‘나이키’의 무한지원으로 한 편도 힘들다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네요. 정말 부럽습니다.

아마존 스튜디오의 새로운 시리즈



2012년 세계 최대의 온라인 서점을 시작으로 애플과 구글에 버금가는 멀티미디어 왕국을 건설한 아마존(Amazon)이 자체 콘텐츠 제작과 배급을 위해 아마존 스튜디오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2014년 봄부터 본격적인 서비스를 위해 유아 및 아동용으로 개발된 6개의 시범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 그중 파일롯 단개를 통과한 3편은 시리즈 본편 제작단계에 있다고 합니다. 그중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자 아마존 첫 유아용 시리즈물인 ‘Tumble Leaf’ 입니다.


10/30/2008

화제의 스톱모션 이야기 2 : 광고와 단편의 모호한 경계






치열한 시장 상황을 대변하듯 미국의 항공사 광고는 자동차 광고와 더불어 연간 제작 편수가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다양하고 창의적인 광고를 많이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항공사가 실사를 기본으로 한 광고물을 제작하는 데 반해, 유나이티드 항공은 꾸준히 스톱모션과 컴퓨터 그래픽, 실험적인 애니메이션을 사용해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클레이 페인팅으로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존 그라츠 감독이나 NFBC의 스타 감독 이슈 파텔 등 마스터급 작가를 초빙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거나, 과감하게 신진 작가를 기용해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광고를 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첫 영상은 유나이티드 항공의 광고 캠페인 <It's time to fly>의 일환으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에 맞춰 런칭한 TV 광고 <Sea Orchestra>편입니다. 남아공의 'Shy the Sun'이란 연출팀이 손으로 그린 텍스처, 컴퓨터 애니메이션 캐릭터 및 하늘·산호초·물 사진을 이용하여 제작하였죠.






위 영상은 같은 캠페인의 다른 광고 <Two Worlds>편입니다. 흑백과 컬러의 다른 두 세계를 보여준 이 광고는 노르웨이와 일본 작가로 구성된 'SSSR'이란 팀과 프랑스의 Gaelle Denis 감독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을 메인으로 하였고, 실사와 매트 페인팅도 사용하였습니다. 특이한 점은, 매트 촬영을 하기 위해 사용한 매트가 우리가 흔히 식재료로 알고 있는 라이스페이퍼라고 합니다.








위에 링크된 두 편의 컷아웃(Cut-Out) 작품은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Jamie Caliri 감독과 그의 팀원들이 종이로 된 퍼펫과 미니어쳐를 사용하여 제작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입니다. 애니메이션뿐만 아니라 실사영화와 뮤직비디오도 제작하는 Jamie Caliri 감독은 2004년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의 타이틀 신을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아래의 두 작품은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컷아웃 기법의 수작으로 손꼽히고 있죠.






유나이티드 항공의 광고를 보면 하나의 단편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한 느낌이 납니다. 그러한 이유 중 하나는 광고제작 방식에서 기인합니다. 광고에 작가의 역량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홍보 컨셉만을 작가에게 제시하고, 작가가 자신만의 스타일로 광고를 풀어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작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캐나다영화위원회의 간판스타인 이슈 파텔 감독은 이러한 자유로운 제작 방식을 통해 광고에 작품성과 깊이를 더하게 됩니다.

이슈 파텔 감독은 인도 출신으로 캐나다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실험 작품을 내놓는 거장입니다. 셀 애니메이션과 구슬 비즈, 샌드 애니메이션과 클레이 페인팅 등 다양한 표현 방식과 기법적인 실험으로 자신만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애니메이션 감독입니다. 위 영상에서 파텔 감독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의 마지막을 장식할 주인공은 소문으로만 들었던 감독입니다.이 분은 폴란드의 Aleksandra Korejwo라는 애니메이션 감독입니다. 어느 해인가 페스티벌의 심사위원으로 왔던 친구에게 동유럽 쪽에서 소금으로 애니메이션 만드는 감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작품인지 많이 궁금했었죠. 막연하게 샌드 애니메이션과 비슷할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환상적인 이미지를 창조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이 감독이 제작한 유나이티드 항공의 <Butterfly>편 광고입니다.



8/26/2008

스톱모션 장편 ‘코렐라인(CORALINE)’ 개봉전 예고





친구들과 소식을 주고받던 와중에 현재 제작이 진행되고 있는 <코렐라인(Coraline)>의 영상들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기존에 영상 몇 개가 온라인에 올라와 있긴 했지만, 이번에는 <코렐라인>을 제작한 스튜디오에서 정식으로 올린 비하인드 영상이 업로드되었습니다. 개봉도 하기 전에 비하인드 영상부터 올리다니 기발한 마케팅 전략입니다. 이번 비하인드 영상에서는 이 작품의 감독인 헨리 셀릭과 친분이 있는 몇몇 친구들의 인터뷰도 볼 수 있습니다. <코렐라인>은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제게 견적 의뢰가 들어왔던 작품이어서인지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프로젝트입니다.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헨리 셀릭 감독의 작품이기에 몹시 기대가 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코렐라인>을 제작하는 라이카(Laika)는 원래 윌빈튼 스튜디오(Will Vinton Studios)였습니다. 그러나 윌빈튼 스튜디오의 소유주가 바뀌고 사명을 라이카로 변경한 이후, 한때 라이카의 향방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코렐라인>은 호사가들의 입방아를 뒤로 하고 라이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내놓는 첫 장편이기에 큰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라이카에게는 스튜디오의 색깔과 방향성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은 약 2년 전쯤 라이카에서 제게 스케줄 확인하고 뼈대 견적을 의뢰하고자 연락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제 친구이자 <코렐라인>의 애니메이션 디렉터인 안소니는 그해 겨울 라이카 스튜디오 근처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감안해 보면, 현재 <코렐라인>은 촬영만 약 1년 7개월간 진행한 상황입니다.  최고의 스텝들이 긴 시간 동안 제작에 참여한다는 점을 보면, 라이카에서 얼마나 <코렐라인> 개봉에 전력을 기울이는지 추측할 수 있습니다.

실제 개봉작을 봐야 작품의 완성도나 작품성을 알 수 있겠지만, 유튜브에 공개된 비하인드 클립만 봐도 <코렐라인>의 뛰어난 완성도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셀릭 감독의 작품은 팀 버튼 감독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일반 대중보다는 마니아층에 의해 흥행 성적이 좌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가 감독했던 기존 작품의 흥행 성적을 미루어 보면, 이번 작품도 여타 CG 애니메이션이나 디즈니 작품의 흥행에는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라이카의 든든한 뒷배경으로 거대 자본을 가지고 있는 필 나이츠 나이키 회장이 작품의 흥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굉장히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공개된 <코렐라인>의 예고편만 봐도 이 작품이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깁니다. 그리고 사실 흥행 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장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즐길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역대 어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도 <코렐라인>처럼 개봉 전 대규모 마케팅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라이카의 공격적인 행보를 지켜보고 있자니, 벌써부터 내년도 아카데미 장편애니 부문이 얼마나 치열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픽사와 디즈니 연합, 나이키와 라이카 연합, 그리고 드림웍스가 벌써 참전을 선언했습니다. 정말 내년 애니 시장은 헐리우드 영화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거대 스튜디오들의 전쟁터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에 반해 영국의 아드만과 소니 연합은 관망하며 내부적인 문제로 숨을 고르고 있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이 두 스튜디오의 불참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는 물량 공세의 거센 전투를 예상한 두 섬나라의 영리한 선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찌 되었건 2009년 2월 <코렐라인>이 드디어 개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