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2015

라이트 페인팅 단편 ‘LIGHTSPEED’




하나의 제작방식이 탄생해서 대중화되고 기교적으로 발전되는 양상을 보고 있자면 살아있는 생물의 진화를 보는 듯 합니다. 오늘 소개할 라이트 페인팅(light painting)도 그렇게 변화하는 중입니다.

라이트 페인팅은 빛과 카메라의 노출을 이용해 이미지를 만드는 것으로,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용 기기의 보급을 통해 급속도로 확산된 예술형식입니다. 몇몇 아트그룹의 작품활동 및 일반대중의 취미로 시작된 이후 상업광고에 등장하면서 그 전성기를 누렸지요.

제가 라이트 페인팅에서 항상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건 카메라 렌즈를 통해 시간의 길이를 조절하며 나름의 시간과 공간이 있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타임랩스화된 현실’과 ‘새로이 창조된 세계’가 공존한다는 점도 재미있는 특징 중 하나예요. 또한 라이트 페인팅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는 아이들이 즐겁게 낙서한 것 같아서 몽환적인 느낌이 더욱 두드러지죠.

지금은 전에 비해 라이트 페인팅의 인기가 어느 정도 사그라든 듯 보입니다. 그런데 최근 라이트 페인팅에 내용과 형식의 측면에서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전문작가들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전문작가들 중 하나가 Darius Twin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는 미국의 라이트 페인팅 작가 Darren Pearson입니다. 위에 링크된 영상은 그의 단편 <Lightspeed>입니다.

이제까지는 대다수 라이트 페인팅 작업물들이 주로 팀 작업 위주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재미와 즐거움’이 작업의 주된 목적이 되었습니다. 이게 바로 라이트 페인팅이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간 이유일 겁니다. 공동창작 활동을 위한 새로운 장르로 등장하게 된 거지요.

Darren Pearson 감독은 재미와 즐거움을 위한 일종의 놀이수단이었던 라이트 페인팅에 영상언어를 도입하는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일련의 이미지가 중심이었던 라이트 페인팅을 프레임 사이의 의미를 전달하는 시각적 매개체로 전환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엿보입니다. 타입랩스화된 현실은 이제까지는 그림을 그리기 위한 캔버스와 같았지만, Pearson 감독은 이를 배경 제공이라는 공간의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고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변화로 보입니다. 또한 이 작품이 차별화되는 점은 이미지에 부피감을 부여하는 드로잉 방법을 사용했다는 겁니다. 선을 사용해 이미지를 표현하던 이제까지의 방식과는 다르게 말이죠. 이 때문에 감독이 스스로를 라이팅 조각가라 부르지 않나 싶습니다.

Darren Pearson 감독의 작품을 감상해보면 라이트 페인팅(혹은 light sculpture 빛으로 만든 조각)이라는 장르의 매력에 흠뻑 취할 수 있을 겁니다. 아래는 그의 이전 작품 <Light Goes On>입니다.





1/11/2015

JIN AIR 스톱모션 광고






세대를 아우르는 마니아층을 보유한 레고(LEGO)나 플레이모빌(Playmobile) 같은 피규어들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오브제로 자주 사용된 바 있습니다. 최근에는 스톱모션 스타일의 CG영화 <레고 무비(The LEGO Movie, 2014)>가 개봉되어 그 사그라들지 않는 인기를 다시 한 번 과시하기도 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2014년 11월 플레이모빌을 이용한 진에어 광고가 런칭되었습니다. 1차 광고인 ‘후쿠오카’편의 뒤를 이어 12월에는 2차로 ‘코타키나발루’편이 나왔구요. 이 두 편의 광고는 친근한 피규어들의 신나고 경쾌한 리듬감을 볼 수 있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입니다. 애니메이팅이 가능하도록 설계된 스톱모션용 인형이 아닌, 움직임에 제약이 있는 피규어를 그대로 사용한 탓에 애니메이팅에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 광고 컨셉에 맞는 흥겨운 분위기와 움직임이 멋지게 표현된 광고입니다.

이 광고를 제작한 사람은 ‘쇼타임 스튜디오‘의 김준문 감독입니다. 이미 업계에서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캐리커처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모든 과정을 혼자 소화할 수 있는 멀티플레이어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김준문 감독의 대표작인 무한도전의 클레이 애니메이션과 메리츠 화재의 퍼펫 애니메이션 광고는 다들 한 번쯤 접해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작년 12월에는 국내에서 제작한 스톱모션 광고가 미디어에 유달리 자주 노출되었습니다. 최소 네 편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요. 확인해본 결과, 모두 쇼타임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광고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수의 광고가 동시다발적으로 방영된 점, 그리고 그 모든 광고를 특정 스튜디오에서 전부 만들었다는 점은 스톱모션 업계에서 그리 흔한 일이 아닙니다.김준문 감독은 한 달에 최소 두 편 정도의 광고 제작에 참여한다고 합니다. 많게는 한 달에 네 편이나 되는 광고에 참여한다고 하니 준비와 촬영기간이 짧은 광고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가히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더군요.

김감독의 쇼타임 스튜디오를 생각하면 클레이 애니메이션이 자연스럽게 먼저 떠오릅니다.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거장 윌 빈튼도 극찬한 김준문표 캐리커처 캐릭터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쇼타임 스튜디오의 포트폴리오를 찬찬히 살펴보면 최근 몇 년간은 스톱모션의 다양한 세부 장르에 도전하고 실험하는 시기였고 지금은 10여년이 넘은 그의 치열했던 경력에서 나온 솜씨가 완숙기에 접어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김준문 감독은 컷아웃, 픽실레이션, 페이퍼, 피규어, 의류, 가방 등 거의 모든 오브제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광고를 만들고 있습니다. 오히려 다루지 않은 오브제를 찾는 게 더 빠를 정도죠. 지상파나 케이블, 그리고 인터넷에서 봤던 다양한 스톱모션 광고들 중 열에 아홉은 김준문 감독의 쇼타임 스튜디오에서 만든 거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KT, SK텔레콤 등의 통신사 광고에서부터 다음, 코카콜라 같은 대기업 광고, 그리고 유아용 장난감 광고까지 말이지요.

우리나라에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광고나 홍보영상 제작에 참여할 경우, 손이 여간 빠르지 않은 애니메이터가 아니고서는 광고주와 광고 프로덕션을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 제작기간이 매우 짧거나 애니메이터가 광고 촬영장에 당일 투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어느 프로덕션이 알음알음 고용한 애니메이터의 서투른 실력 때문에 촬영 당일 광고주 앞에서 낭패를 봤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제작을 실제 담당하는 사람이 어떤 작업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 즉 다시 말해 ‘경험’이 중요한 건 광고 촬영현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돌발상황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노하우와 순발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기로 광고 촬영시 혼자 인형과 세트를 수정하며 애니메이팅까지 할 수 있는 경험 많은 감독급 인력은 두어 명에 불과합니다. 김준문 감독은 광고 프로덕션과 여러 작업을 함께 하며 쌓은 신뢰를 통해 지금처럼 많은 작품을 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스톱모션 스튜디오 입장에서 세트와 퍼펫을 이용한 스톱모션은 오브제를 이용한 스톱모션보다 시간과 노동력의 측면에서 더 큰 부담이 되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퍼펫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광고와 홍보물의 단가가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저평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쇼타임 스튜디오의 포트폴리오를 보고 있자면 김 감독이 효율적인 스튜디오 운영에 대해 고심한 흔적들을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습니다. 김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자타공인 최고 실력자이면서도 본인의 주특기 장르만이 아니라 스톱모션 세부 장르로까지 영역을 확장하는 현실적인 선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환영할 만한 건 우리나라에도 여러 가지 오브제를 사용해 스톱모션의 다양한 모습을 일반인에게 보여주는 쇼타임과 같은 스튜디오가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스톱모션하면 퍼펫이나 클레이애니메이션이 전부라고 알고 있는 일반적인 선입견을 깨고 있다는 말이죠. 이거야말로 진정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의 대중화’가 아닌가 합니다.

스톱모션 스튜디오의 운영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김준문 감독의 ‘쇼타임 스튜디오’는 광고시장의 다변화된 니즈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한사람의 천재성을 기반으로한 감독 중심의 스튜디오 형태를 정착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스톱모션의 확장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상업 스튜디오의 생존방법을 모색하고 있기도 하지요. 반면, 앞서 다른 포스트에서 다룬 적이 있는 양종표, 이희영 두 감독의 ‘콤마 스튜디오’의 경우에는 척박한 한국 스톱모션 환경에서 유기적인 팀 작업을 위한 전문가 스텝 시스템을 꾸준히 실험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두 스튜디오는 지속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면서 한국적 스튜디오 시스템을 연구하는 것만이 살아남는 방법이라는 선례를 한국 스톱모션 역사에 남기고 있습니다. 저는 전설의 사업가 감독들이 자신들의 스튜디오가 스톱모션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등의 번지르르한 사탕발림으로 젊은 스텝들을 선동했야만 했던 시절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저분한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지금 이 순간, 더 명확해진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우리 스톱모션 역사가 꾸준히 활동하는 작업자의 몫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촬영을 하고 있을 쇼타임 스튜디오의 김준문 감독 같은 대중예술 작업자들 말입니다. 2015년 새해에는 좋은 작업자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