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6/2014

곱씹고 볼만한 러시아 유아용 애니메이션




지난 여름 러시아에 있는 오랜 친구가 안부와 함께 사진 몇 장을 보내왔습니다. <플라스티신 알파벳>이라는 작품이 러시아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특별상을 수상한 사진이었죠. 페스티벌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제 친구는 이 작품에 대해 아낌없는 칭찬을 덧붙였습니다.

<플라스티신 알파벳>은 근래에 보기 드문 클레이를 사용한 작품으로 러시아 알파벳 습득을 위한 유아용 애니메이션입니다. 유아를 대상으로 한다고 보기엔 아트 디렉션이나 구성이 웬만한 단편 작품을 뛰어넘는 수작이죠. 기본적인 제작방식으로 부조 형식이 사용되었고, 여기에 클레이 퍼펫과 멀티플레인 기법으로 3차원적인 공간감을 가미한 듯합니다. 이런 복합적인 기법을 사용한 덕에 기존 부조 방식과는 다르게 독창적이면서도 신선한 시각적인 느낌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작품의 다른 매력은 친근하고 감성적인 캐릭터와 스토리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모국어의 글자를 처음 접하는 아이들을 위해 러시아의 전통과 문화를 담은 요소를 곳곳에 배치한 점도 마음에 듭니다. 교육용 애니메이션의 목표를 잊지 않고 기본에 충실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부조 형식’의 애니메이션을 편의상 ‘2.5D 스톱모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부조 형식이 친근한 이유는 이게 애니메이션 역사 초창기부터 꾸준히 사용되어온 오랜 제작방식이기 때문일 겁니다. 유리 놀슈테인, 이지 트릉카, 포야르 등 여러 거장들의 작품도 이러한 친근함에 일조했구요. 부조 형식은 아마도 애니메이션 초기에 관객의 눈에 익은 2차원적인 드로잉을 3차원으로 옮기면서 나타난 방식, 혹은 인형이나 오브제를 이용한 3차원적인 제작방식을 회화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로 이해됩니다.

최근 러시아의 전설적인 스튜디오 ‘소유즈뮬트’에서 일하던 친구와 메신저를 하던 도중 제작환경이 예전 같지 않다는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때 세계적으로 명성이 드높던 러시아 애니메이션 업계가 공산체제 붕괴 이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도 여기저기서 들려오구요. 그렇지만 쉽지 않은 제작환경에서도 거장과 신진 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작품이 꾸준히 나오는 걸 보면서 러시아 애니메이션 업계의 밝은 미래를 예상해 봅니다. 특히 오늘 올린 작품과 같이 작가의 색깔이 듬뿍 담긴 상업물을 보면 더욱더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용어 설명 : 플라스티신 (Plasticine)  1897년 영국의 미술교사 윌리엄 허버트가 만든 합성 클레이. 굳지 않아 모델용으로 주로 사용. 일반적으로 애니메이션에서는 ‘클레이’라고 말하면 ‘플라스티신’을 지칭한다.


9/22/2014

하이브리드 애니메이션, THE BIGGER PICTURE





이번 포스트는 이미 많은 분들이 보셨을지도 모를 영국국립영화학교(NFTS)의 올해 졸업작품 가운데 한 편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 작품 <The Bigger Picture>은 너무 짧은 예고편만 올라와 있어 그동안 포스팅을 미뤄왔는데,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계속 승승장구하고 있는지라 이번에 메이킹과 더불어 올려봅니다.

올해 초 이 영상을 처음 접하고 절로 ‘우와!’하고 감탄이 나왔습니다. 바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죠. 감독은 누구나 한번쯤 해보기 마련인 ‘그림이 살아 움직이면 어떨까’라는 상상을 애니메이션으로 시각화해냈습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2D 캐릭터가 현실과 인터랙티브하게 반응하는 실험적인 구성으로 스토리가 짜여 있습니다. 물론 현실을 표현하는 건 스톱모션이 담당했구요. 이 작품의 독특함은 영상 속 세트와 소품을 비롯한 모든 요소들이 실제 사이즈라는 점에서도 드러납니다. 오늘 영상은 절로 감탄이 나올 만큼 신선함을 뛰어 넘어 과감함을 보여주는 패기 어린 작품입니다.

<The bigger Picture>처럼 해마다 어떤 작품이 나올지 기대 되는 학교가 바로 영국국립영화학교(NFTS)입니다. 영화학교로는 유일하게 ‘Animation Directing’전공(석사과정)이 있다고 하더군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영국왕립예술학교(RCA)와 교환수업을 하고, RCA 졸업학위가 수여가 되는 학교입니다. 또한 소수정예로 까다로운 검증을 통해 입학하고, 졸업때까지 재학생들의 실력을 철저하게 관리하기로 유명하죠. 그래서인지 졸업작품의 수준이 놀랄만큼 뛰어납니다. 저는 재작년 NFTS의 졸업작때문에 아카데미상 후보작에 참여했다는 크레딧을 얻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해외에서 배울 계획이 있다면 미국편향적인 유학지를 좀 더 다변화 해보길 조심스럽게 제안합니다. 유럽시장에 대한 전문가가 미주지역에 비해 너무 없다는 걸 현장에서 겪고서 하는 말입니다.

스톱모션코리아의 커뮤니티 회원이었던 오민영 감독이 NFTS를 졸업하고 런던에서 활동 중입니다. 그 이후 한국인으론 세 번째 입학생이 그곳에서 애니메이션을 배우고 있습니다. 지금 해병대 캠프같은 과정을 겪고 있을 예비작가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내년에 꼭 멋진 작품으로 만나고 싶습니다. 화이팅!






9/19/2014

우리도 한다. POST-IT 애니메이션





세븐슬로스 스튜디오(7 Sloth Studio)가 최근 새로운 영상을 게시했습니다. 세븐슬로스 스튜디오는 류진호 감독을 비롯, 역량있는 작가들이 모여 스톱모션 및 다양한 장르의 애니메이션 작업을 하고 있는 젊은 스튜디오입니다.

위에 올린 포스트잇 작품은 류진호 감독이 호서대학교 애니메이션과 학생들과 함께 2011년 여름 스튜디오의 스테이션 ID 영상을 제작하는 프로젝트의 결과물입니다. 음향이 최근에 완성되어 얼마전 온라인으로 공개되었습니다. 이 영상은 총 6만 여 장의 포스트잇을 사용했고 제작기간은 2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한 독일 작가가 인터뷰에서 포스트잇 작업을 하는데 계획보다 제작기간이 너무 오래 걸려 힘들었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류 감독도 이와 똑같은 말을 해서 웃었습니다.

이 영상은 든든한 재정지원을 받은 대규모 상업 프로젝트는 아닙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가 담고 있는 의미는 적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사람이 한데 참여한 공동 창작물이 드물기 때문이죠. 거장을 만드는 작가나 감독 위주의 기존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애니메이션이 탄생하게 된 계기가 유희, 즉 즐거움이라는 걸 생각해본다면 이런 공동창작 프로젝트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애니메이션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즐거움'을 공유하고 경험한다는 것, 이거야말로 애니메이션의 진정한 대중화이자 우리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목적이지 않을까 싶네요.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의 패기 있는 도전을 응원합니다.



9/15/2014

스톱모션의 실험, “UNITY”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 가지고 있는 멋진 매력 중 하나는 작가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익숙한 오브제를 통해 자신만의 감성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적인 표현에서부터 전위적인 표현에 이르기까지 말이죠. 뮤직 비디오 형식의 <Unity>는 미국의 작가 Tobias Stretch가 아방가르드 작곡가인 Christopher Bono의 합창곡을 스톱모션 기법으로 시각화한 콜라보레이션 작업물입니다. 작가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동상까지 얻어가며 3미터나 되는 관절 퍼펫을 프레임 촬영했다고 합니다.

영상 제작에 있어 태양과 구름, 바람이나 비 같은 자연적 요소는 작가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부여하는 오브제이긴 하지만, 스톱모션에서는 큰 장벽이 되는 부분입니다. 프레임 단위의 촬영방식으로는 통제 불가능한 자연적 요소를 그대로 담을 수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언젠가부터 이러한 기존 개념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같은 변화는 아방가르드한 영상부터 시작되어 이제는 퍼펫을 이용한 스톱모션에서도 이용되곤 합니다. 위 작품은 스톱모션 분야에서 금기시했던 시간의 변화를 하나의 오브제로 사용하여 영상효과를 극대화한 좋은 예로 보입니다.

P.S. 실제 사람 크기(life-size)의 퍼펫을 이용한 애니메이션이 최근 들어 자주 등장하는군요. 이게 새로운 트렌드의 시작인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아래 참고영상은 작가가 이전에 제작한 뮤직비디오입니다. 위 작품과는 시기적으로 차이가 있는데요. 제작 경향의 변화 등을 생각하며 감상하면 도움이 될 듯합니다.









9/04/2014

아드만의 새 장편 <못말리는 어린양 숀>




원제 <Shaun the sheep>으로 알려져 있는 아드만의 TV 시리즈물 <못말리는 어린양 숀>이 극장용 장편으로 2015년 봄 개봉을 위해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숀’ 캐릭터가 처음으로 등장한 건 아드만의 대표감독 중 한 사람인 닉 파크 감독의 <월레스와 그로밋>에서였습니다. 여기에서 ‘숀’이 큰 대중적 인기를 얻게 되자, 결국 ‘숀’을 주인공으로 한 텔레비젼 시리즈가 편성제작되어 170여 개국에서 방송을 타게 되었죠. 이번 영화는 하루 휴식을 얻게 된 ‘숀’이 친구들과 함께 농부를 찾아 도시로 좌충우돌 여행을 떠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허당 해적들>이 개봉한 이후로, <월레스와 그로밋>과 <치킨런>에서 볼 수 있었던 아드만의 스타일이 점점 퇴색되고 있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드만식 애니메이션의 유쾌함과 아기자기함을 잘 보여준 캐릭터로 꾸준히 방송을 통해 인기몰이를 해왔던 ‘숀’이 이번 극장판을 통해 호사가들의 뒷담화를 어떻게 잠재울지 기대됩니다.

<못말리는 어린양 숀>은 2015년 2월 6일 영국에서 먼저 개봉할 예정입니다.







9/02/2014

브라질에서 온 컷아웃 애니메이션 – DRUGO




미국의 United Airline 광고 이후 처음으로 컷-아웃 기법을 이용한 멋진 작품을 발견했습니다. 브라질에서 제작한 공익광고인 듯한데, 포르투갈어라서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네요. 컷-아웃 애니메이션의 제작 경향이 점점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컷-아웃으로 자리잡는 듯 보여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디지털로 전환하는 게 비용 절감이나 제작 인원 및 기간의 단축 등 효율성 측면에서 낫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그림자 길이가 주는 자연스러움이나 가끔 프레임이 빠진 듯한 움직임, 그리고 컷-아웃 인형들의 미세한 잡움직임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전통적인 컷-아웃의 ‘손맛’, 이런 스톱모션만의 즐거움을 아직까지는 포기하고 싶지 않네요. 이번 <Drugo> 광고는 디지털 컷-아웃이라는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면서도 전통적인 컷-아웃의 장점을 많이 간직한 작품으로 보입니다.

아래의 영상은 Drugo광고의 메이킹과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컷아웃 광고입니다. 유나이티드 항공사의 시리즈광고는 뛰어난 완성도의 컷아웃 애니메이션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 메이킹 >